<알려드립니다 : 아래의 글은 폴리토크의 내용을 게재한 것입니다.>
민족주의가 퇴장하는 역사의 현장
얼마 전 싱하이밍 중국대사가 한 망언은 6년 전 시진핑 중국주석이 했던 망언을 소환하고 있다. 싱 대사의 망언에 대해서 윤석열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응하고 있다. 그러나 시진핑 주석의 망언에 대해서 당시 문재인 정부는 소극적으로 대응했었다. 중국발 망언에 대한 정반대의 정부행동이 보여주는 시대사적 의미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민주화 이후에 30여 년 동안 우리를 지배했던 민족주의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져 가고 있다는 의미일 듯싶다.
싱하이밍 대사의 망언부터 살펴보자. 싱 대사는 이재명 야당대표를 성북동 관저로 초대해서 강의하듯 A4 용지를 들고 읽어 내려갔다. “미국이 전력으로 중국을 압박하는 상황 속에 일각에서 미국이 승리하고, 중국이 패배할 것이라는 베팅을 하고 있다”며, “분명히 잘못된 판단”이라고 단언을 하고, “나중에 반드시 후회할 것”이라고 폭언을 했다. ‘일각’이란 윤석열 정부를 말하는 것이고, ‘후회할 것’이란 중국이 한국에 보복하겠다는 뜻이다.
미·중정상회담에서 시진핑 주석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은 역사상 중국의 일부였다.”라면서, 우리나라 역사 전체를 모욕했다. 고구려를 비롯한 한반도의 역대왕조는 중국의 지방정부에 지나지 않았다는 말이다. 고구려가 중국대륙의 정치를 주무르던 외교 강국이었다는 사실은 차치하더라도, 한사군을 빼놓곤 중국의 지방정부였던 왕조는 우리 역사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의 매체는 시진핑의 망언이 “남한 사회를 완전히 격분하게 만들 수 있다"고 보도했었다.
싱하이밍의 망언이 나오자, 윤석열 정부는 단호하게 대응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국무회의에서 오만방자했던 ‘위안스카이와 비슷한 행태가 떠오른다’는 시중의 말을 인용하면서, “싱 대사의 부적절한 처신에 우리 국민이 불쾌해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외교부는 즉각 싱 대사를 초치하고, “내정간섭을 하지 말라”는 엄중 경고를 날렸다. 국민의힘에서는 ‘페르소나 논 그라타(외교적 기피인물)’로 지정하자‘고 제안하기도 하였다.
시진핑 주석의 망언이 밝혀졌을 때, 격분할 줄 알았던 문재인 대통령은 침묵으로 일관하였다. 민주당도 신중을 기한다면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한·중정상회담차 베이징을 국빈방문했을 때, 문 대통령은 10끼 가운데 8끼나 혼밥을 먹어야 했다. 더욱이 우리 기자들이 중국 공안에 두들겨 맞기까지 했는데도 아무 소리 못했다. 그러면서도 베이징 대학에서는 ‘중국은 커다란 봉우리이고, 우리나라는 작은 나라’라고 스스로 낮추었다.
중국발 망언에 대한 윤 정부와 문 정부의 대응은 천지차이다. 왜 이런 차이가 났을까? 두 망언이 가지고 있는 중량감의 차이 때문인지도 모른다. 싱하이밍은 국장급에 지나지 않는 주한대사이고, 시진핑은 중국의 최고권력자이므로 인물의 중량감이 크게 다르다. 싱 대사와 달리 압도적 권력을 가진 시 주석을 잘못 건드리면 큰 화를 입을 수도 없지 않을 것이다. 문재인 정권에겐 트라우마가 있었는지 모른다. 정권초기에 시 주석의 반대를 무릅쓰고 사드를 성주에 배치하자, 중국당국은 사드 부지를 제공했던 롯데를 불매운동을 벌여서 쫓아냈다. 중국인들의 한국관광도 막아 버렸다.
행위자의 중량감에 따라 대응을 달리 하는 것은 외교상식에 어긋난다. 싱하이밍의 행동도 시 진핑의 행동과 똑같이 국가를 대표하는 행동이다. 싱 대사의 행동은 독자적일 수 없다. 외교관은 국가를 대표해서 행동한다. 본국의 최고권력자가 뜻하는 바를 어길 수 없다. 그러므로 국가의 행동은 행위자에 따라 의미가 축소되거나 확대되지 않는다. 직접적이냐 간접적이냐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중국발 망언에 대한 윤 정부와 문 정부의 태도 차이는 망언의 중량감에서 나온 것이 아니다. 그것은 문제의 인지태도에서 차이가 났기 때문이다. 싱 대사의 망언은 대한민국의 국가미래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곧바로 국가 대 국가의 문제이다. 그런 문제는 외교적 규범에 따라 대처해야 한다. 주권국가 사이의 외교규범은 2차 대전 뒤에 맺은 비엔나 협약에 규정되어 있다. 싱 대사의 태도는, 다시 말해서 중국의 태도는 비엔나 협약에 어긋난다. 윤정부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를 바로잡기 위해서 씩씩하게 대응하고 있다.
시 주석의 망언은 우리 민족의 과거에 대한 것이다. 그것은 어찌 보면 국가에 대한 문제가 아니라 민족에 대한 문제이다. 민족의 문제도 국가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한, 국가의 문제로 환원시켜야 한다. 그러나 국가개념이 흐렸던 문 정부는 국가 대 국가의 문제로 대처하지 못했다. 민주화세력의 민족주의와 백두혈통의 민족주의가 결합된 두 겹의 민족주의에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민족주의의 이중성에 있다. 민족주의를 추구하던 정권이 어떻게 민족적인 수모를 수용할 수 있었는지 알 수 없다. 민족자존심을 내세워 주변국을 무시하고 우리끼리 통일하자면서도, 주변국의 엄포에 민족수모를 감내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 수 없다. 민족자존심을 내세워 반일·반미를 하면서도, 민족자존심을 억누르고 종북·종중하는 민족주의가 어찌 일관성이 있다고 하겠는가? 국민들이 피로감에 젖어있다. 이재명이 싱 대사에게 한 마디도 안 한 것은 민주당조차도 잘못되었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동안 기승을 부렸던 민족주의가 조금씩 역사의 현장에서 퇴장하고 있지 않나 싶다.
김주성(폴리토크 대표, 전 한국교원대 총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