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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정연 수요칼럼] 집단사고(Group Think)에 함몰된 개인의 자유

  • 관리자
  • 등록 2023.07.17 16:28:46

[자정연 수요칼럼]

집단사고(Group Think)에 함몰된 개인의 자유

 

역사 이래 국가의 최고 지도자는 지식인을 손 안에 넣기 위해 그들을 통제하거나 회유하려는 노력을 다각도로 시도했다. 인류사에 큰 영향을 미친 사건만 꼽아도 진시황이 감행한 분서갱유, 히틀러의 지식인 세뇌와 박해 및 서적 소각, 비슷한 시기 장개석의 지식인 통제, 모택동의 친위그룹이 주도한 소위 문화대혁명이 모두 지식인을 대상으로 했던 사건들이다. 한국도 예외가 아니다. 한일강제 병합에 찬성한 ‘을사 오적’은 모두 당대의 지식인들이었다. 

 

히틀러의 국가사회주의 독일노동자당(Nazi Party)이 권력을 잡을 수 있었던 동력은 독일국민들이었다. 당시 사회의 현실불만, 민족적 열패감 등이 기저에 깔려 있었다. 1차 대전의 배상금 부담과 세계경제공황의 시점에서 나치당이 민심을 파고 들었다. 그들은 게르만 민족주의를 내세워 타 민족을 혐오하고, 유태인이 경제적 어려움의 원인이라고 선동했다. 권력을 장악한 후 나치는 유태인 대학살을 자행한다. 그럴 때까지 독일의 지식인들은 무엇을 했을까?

 

지식인들이 절대권력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진실을 말하고 비판자 역할을 올곧게 했더라면 역사는 많이 달라질 수 있었다. 일본의 메이지(明治), 다이쇼(大正), 쇼와(昭和)시대의 군국주의, 히틀러의 반 유태 종족주의와 전체주의 시대, 그리고 모택동의 개인숭배까지 지식인들의 흔들림 없는 가열찬 비판이 있었다면 광란의 전체주의 시대는 조기에 마감될 수도 있었다. 대한민국은 역사의 고비고비에서 지식인의 역할이 미미했다. 몸을 던져가며 앞장서지 못했다.

 

최근 십 수년 간 한국사회에서 4대강 사업 여부가 논란이 됐을 때 일부 지식인들이 보여준 사실왜곡과 부역, 세월호 침몰사건을 정치적으로 악용한 민주당, 이를 빌미로 박근혜 탄핵까지 이어진 촛불참사, 그리고 대일 과거사 및 일본군 강제 성피해여성 문제에 대한 왜곡 등 모든 사건들은 정치적 지식인들이 주도했다. 조국 사태는 문재인의 집권 기간 중 가장 큰 인사 스캔들로 남게 된다. 조국은 장관 임명 35일 만에 사퇴하고 정권교체의 변곡점이 된다. 

 

일본과 한국의 자유주의 사상 수용 과정을 연구해 온 역사정치학자 김석근 박사는 "한국 사회가 해방 후 지금에 이르기까지 가장 부족한 부분이 자유주의"라며 "자유주의의 기초 자체가 매우 미약하다"고 지적했다. "동아시아에서 자유주의는 꼭 필요한 것이지만 굉장히 취약하고 어려움이 많다"며 "지금도 개인의 자유에 대해 말은 많이 하지만 실제 생활로 들어가면 잘 안되고 있다"고 했다. 계급사회에 익숙한 DNA가 개인의 자유가 들어설 틈을 주지 않았다.

 

개화파 지식인들은 자유주의를 서구 문명의 본질로 봤다. 이를 통해 부국강병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세상물정에 어두운 성리학자들은 주야장천 衛正斥邪(위정척사)를 외쳐댔다. 집단사고는 집단 내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허용하지 않는다. 지금도 자신들의 생각과 다른 의견을 말하면 개딸들은 벌떼처럼 달려들어 집단린치를 가한다. 자유민주주의는 개인의 다른 의견을 권장한다. 그것이 창의력과 시너지의 원천이고 이 시대를 살아가는 경쟁력이다. 

 

우리는 언제쯤이면 자유가 넘치고 정의가 살아 숨쉬는 자유민주주의를 꽃 피울 수 있을까? 

 

2023년 7월 12일


자유정의시민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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